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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 동네 한바퀴....
pooh' red jacket

열쇠가 없는걸 안 것은 문 앞에서였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버스에서 내릴때도, 아니 도망치듯 눈치를 살
피며 퇴근을 할 때조차도 몰랐다. 문 앞에 서서 벽에 무릎을 받치고
가방을 이리저리 뒤져도 열쇠는 없었다. 엉켜있는 핸드폰줄과 워크맨
이어폰에 다이어리, 볼펜이 뒤엉켜 있는채로 들쳐보고 찾아봤지만 없
었다. 어떻게 된걸까. 회사에 두고 왔는지, 그냥 방에 놓고 출근을
한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참 부산스레 조바심을 치다가 포기하고 문앞에 서서 아침을 돌이켜
본다. 늦지도 않았는데 덤벙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갖고 나온 것은 어
제 산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책이었지, 열쇠가 아니었다. 다시 엘리
베이터를 탔다. 나 지금 하강중...

이곳으로 이사 온지 1년이 되었지만, 난 아직 이 동네를 모른다.
아는 곳이라고는 버스정류장과 휴일이면 타게되는 백화점 셔틀버스가
지나는 길들뿐.
아파트 단지마다 별채처럼 붙어 있는 상가에 다닥다닥 붙은 간판을 훑
어본다. 슈퍼와 부동산과 세탁소와 태권도장, 아~ 가끔 시켜먹는 치킨
집은 저기였군. 문방구와 비디오가게, 그렇게도 흔해빠진 커피전문점
하나 없는 이 동네가 싫어진다.
8시 30분이 넘어가는 금요일 저녁. 어디로 가야하나. 지금 난.....

발길이 닿은 곳은 아파트단지 입구 사거리에 공원이었다.
먼저 급한대로 화장실을 잠깐 들르고,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부지런
히 종종걸음을 치는 젊은 미스들, 또는 롤러브레이드와 야광바퀴가 번
쩍이는 퀵보드가 휙휙 지나다니는 공원이 생경스럽다. 모두들 편한 옷
차림을 하고는 밤산책을 나와 있는데, 이방인처럼 직장인의 복장으로
벤취에 앉아보니, 역시나 이곳의 풍경에 난 어울리지 않았다.

떡볶이에 커피 한잔 같고, 소주에 함박스테이크 안주같다. 만취한 다
음날. 아침에 먹는 카레라이스 같고, 처음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때, 주문한 메뉴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어설프고 어쩌지 못하
는 빈 시간같다. 그 어색함을 못 참고, 다시 움직여 본다. 그냥 길이
이어진 곳으로 걸어가 본다.

이 동네가 이렇게 나무가 많은 줄 몰랐다.
이어지는 길마다 나무그늘로 달빛을 가르고, 그곳엔 어김없이 한산한
벤치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엔 또, 약속이나 한 듯이 밀회를 나누는
젊은 연인들의 뒷 그림자.
이 동네에 봄이 왔을 때, 난 이 봄이 왜이리 미쳐가듯 화려하게 오는
지 이유를 몰랐다.
이제보니 아마도 이 나무들이 꽃나무들이었나 보다.
반짝반짝 봄빛이라고 느꼈던 그 색깔들이 모두 꽃이었구나 싶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 중에서 하나는 아마 불빛을 쫓아 간다는 점이
아닐까. 걷다 보니 난 어느새 도시에 불빛 밝혀진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어느 동네에는 있는 맥도날드가 있었다.
건널목 하나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 애플파이와 커피 한잔을 시켰다.
오싹하게 냉기를 뿜어대는 에어콘 바람과 불빛 들이 있어야 안심이 된
다. 그것이 도시인의 습성인지 모르겠다.

달짝지근한 애플파이와 종이컵 커피를 다 마실 때 까지 애물단지처럼
끼고 다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었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같은 일행이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남녀의 구별도 일거리도 점차 없어지고, 피로한 탓인지 묘하게 기분
만 고조되잖아?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헤어지기가 싫어서, 필요 이상
명랑해지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해도 재미있고 우스워서, 이렇게 사는
인생이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즐거워지기
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들의 존재감이 사방에 잔상처럼 머물러
있어서, 이튿날 아침 혼자 잠에서 깨어나, 아니? 그 사람들은? 하고
멍해 있다가, 아침 햇살 속에서 괜스레 서글퍼지곤 하잖아? .........'
난 지금 우리 동네 여행중...

다시 문 앞에 섰다. 벨을 누르면 문이 열릴 것이고,
방안 전축 위에 열쇠는 보란 듯이 나를 맞을 것이다.
다시 찾은 열쇠로 난 내일도 모레도 문을 열고 들어와 똑같은
밤을 맞 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오늘을 기억하려나...
7 . 8

378 . 내부고발자
루스이 소니도스

자료좀 구하겠다고..경실련..참여 연대 등을 돌다..
90 년도 인가. 감사원 내부고발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그 후 광주 동구에서 시민후보로 출마했던 이문옥 간사를 소개받고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사실 중3 때 일이라 잘 몰라서..그 분이 쓴 책도 좀 읽고..그러고 갔는데...
이제 나이 60이 넘어서 투사 같은 이미지는 많이 사그라 져서
나와 동갑이라는 막내 아들의 결혼과 유학 얘기를 하며..밥을 먹 고..

그다지 내가 원하던 자료들은 아니었지만..과거 권력에 대항하던 내부
고발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이제 형식적으로나마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 장치가 갖춰지기 시작했다며..이제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는 얘기를 하며..언젠가는 변하리라 하며.. 본인
스스로는 그 세상을 못보리라는 마음이 표정에서 살짝 스쳐지나가
고 말았습니다..

나 역시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자신의 얘기는 세상을 한참 더
공부해야 글로 쓸 수 있을 거라며..자신은 할 거 다 한 사람이라고 쓸쓸히
인사를 나눴는데..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뒤적이던 자료들에서 보이는 투사적인 이미지
가 바로 전 나눴던 쓸쓸한 인사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7 . 13

379 . 영화관에 갈때에는 5
tkhong

저는 극장에 달랑 혼자 앉아서 영화를 본적이 제법 있습니다 .
이름이 자주 바뀐 충정로 역 뒤쪽에 있던 푸른 극장에서
'연어알'을 할때였는데 딱 한사람 관객이니까 사람이 더 올때까지
한시간쯤 기다리다 상영을 하더군요 ... 그런데 중간에 들어온
두 여자분이 텅 빈 극장이 무서웠던지 제 근처로 와서 보던게
기억에 남습니다 .

'녹색광선'은 정월 초하루 첫상영을 혼자 봤는데 ... 끝까지
영사를 해주는 참 고마운 극장이었습니다 .
아세아극장에서 '금홍아'를 볼때는 중간쯤에 딱 끊어버리더니
상영을 못하겠다고해서 영사실에서 기사님과 말다툼도하고
... 지배인님도 오고 했지만 박박 우겨서 끝까지 봤습니다 ..
네시간쯤이 걸리더군요

시네하우스에서 '우연한 여행'을 할때는 혼자 들어가니까
매점 아주머니와 기사님 등이 전부 팔짱을 끼고 째려보는 시위를
하시더군요 ...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
우리 영화 보기에 대한 오기같은 똥고집을 피고 다닐때 였습니다 .

말레이지아에 살때도 가끔 혼자만 표를 살때가 있었는데 ..
원주민 검표 아줌마는 아주 단호하게 문을 막아서면서 떠듬거립니다
"온리 ... 유 ... 노!" 손님이 올때까지 기다리다 결국 못본
영화도 있었습니다 .

싱가폴에서는 폭우속에 택시타고 변두리에 있는 작은 극장엘 갔는데
거기서는 오후 1시 1회 상영에만 유럽영화를 하고
2회부터는 주성치가 나오는 홍콩 영화를 하는 싱가폴다운
실리적이고 퓨전화한 경영을 하더군요 .. 프랑스 영화 '마끼'를
강한 에어콘땜에 덜덜 떨면서 본적이 있습니다

혼자서 영화를 보면 특히 겨울에 난방을 해도 추위가 덮칩니다
글구 .. 한심하고 시니컬한 기분에 영화외적 감동이 기다리지요 ..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끔 영화관에 서너명이 앉아 본것 같았는데
복합 상영관 문화가 오면서 차츰 그런 풍경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밤 개봉관 영화들을 훑어보니까 .. 신라의 달밤 슈렉 진주만으로
가득히 메우고 있더군요 . 평준화 된거라고나 할까

올초에 시네큐브에서 아프리카 영화를 잠시 상영했었고
그외에 제삼 세계나 EC 아닌 유럽 나라 영화는 이제 거의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
혼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것은 그만한 문화의 여지가
있었다는것이었고 ... 이제 그런 시간들까지 그리워지네요

요즘은 어쩌다가 그런 영화들을 볼라고해도 장사가 안되면
재빨리 필름 뚜껑을 닫아버리고 ... 신라의 달밤으로 바꿔버리더군요
뒤늦게 극장 앞까지 가서 허탕치고 돌아온적도 제법 있습니다

영화관에 갈때에는
담당하시는 관계자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실수로라도 귀한 영화 올리게 되면
적어도 한주라도 계속 상영하면 어떨까요 ...
7 . 13

400 . 거짓말이야
easy chair

칭구들이랑 술 마시다 집에 전화해서 대충 도서관에 있다고
둘러댔는데 그 도서관은 집에서 가까운데 있다는걸 까먹은거다 .
다시 전화해서 다른 도서관이라고 하는둥 .. 취해서
무뎌진 거리 감각으로 내 말에 밟혀서 넘어지고 말았다 .

어느낮 전철에서 .
대단한 장신에 까망 정장 그리고 선글라스의 여자가 내 옆에 앉았다
전철이 잠시 쿨렁일 정도로 미인이었다 .
다이아나의 장례식에 참석한 니콜 키드만 같았다
그 높은 천정의 대성당에 어울릴 신장 ..

그때 니콜은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지 않았을까 .
'탐의 장례식이었다면 ..'
어쨌든 내 옆의 니콜땜에 쿨한 떨림이 오고 있었다

거짓말 . 전철 안의 다양한 연령층의 남자들의 시선은
혼란하게 내 주위에서 얽히고 있었다 .
물론 니콜은 아주 오랜 세월 그런데 익숙한것처럼 차분했다 .
그리고 전화를 한통 했다 . 비음과 수분과 관악기의 톤으로

내 맘을 배반하고 눈길은 건너편 창에 반사되고 있었다
니콜의 시선은 정확하게 아무데도 향하지 않았다 .
인간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
몇 남자들은 니콜쪽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또 다른 배반 . 눈을 감은 니콜의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
한순간 . 이 어지러운 시선들이 나를 향한것이 아닐까 .. 착각했다
여기는 웨스트 민스터 사원이 아니고 종로의 땅 밑이니까 .
반대편 창에 전혀 다른 두 배역의 인물이 비쳐지고 있었다
착각 - 혼돈 - 착각 - 심증 - 착각 - 확신 - 찰깍

내 자신에게라도 거짓말하지 말고 살수 없을까 .
아침에 얼결에 깨는 바람에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내려갔다가
길게 기지개 한번 하고 엘리베이트를 탔다 .
막 문이 닫기는데 ...

풀에서 건져낸듯한 남자가 양손에 테니스 라켓과 생수통을 들고 탔다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아 불쾌해 여기가 풀 사이드야 ..?

라이어 라이어
7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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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Free Board 내용 중에 오려 온 것들입니다 .
이 외에도 Free Board 에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