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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 종로 도서관1
루스이 소니도스

종로 도서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아마 일제 시대까지 가야겠
지만...실질적으로는 해방 후에 개축이 되면서부터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종로 도서관은 뒤로는 임승희 양이 다니는 배
화 여고가 있고 앞으로는 사직 공원이 있습니다.

예전에 범죄와의 전쟁이 있기 전까지만해도 사직 고원은 범죄의 소굴
이었습니다..공원 한가운데에 이율곡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서있는데..
남자 깡패들은 이율곡 상밑으로..여깡패들은 신사임당 상 밑으로 모
여 지나가는 행인들의 돈을 갈취하곤 했죠...어쩌다 뭣모르는 커플들
이 으슥한 곳을 찾아 데이트할 생각으로 들어왔다가는 신사임당과 이
율곡 상으로 남녀가 찢겨.. 참.. 말하기 민망한 봉변을 당하기도 했고
요...그랬던 공원이 지금은 노인네들의 게이트 볼구장으로 변했습니다..

종로 도서관의 라이벌로는 청와대 옆으로..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있
는 정독 도서관이 있습니다..아트 선재 센터 와 마주 보고 있죠..
라이벌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사실 정독 도서관 쪽에서는 라이벌
로 여기지도 않고 있ㅇ르 겁니다..옛 경기고등학교가 지방 삼류 고등
학교 보듯 할 겁니다..규모로 보나..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준으로 보
나..정독도서관은 고등학교 시절의 캠퍼스때보다 많이 축소됐지만 그
래도 한국외대같은 대학 캠퍼스보다는 큰 규모입니다.. 직원들도 까다
롭기 그지 없고요...열람표를 반납하지 않으면 절대 빠져 나올 수 없
죠..화장실 청소하는 아줌마들도 쉼없이 닦고 또 닦고...분위기가 마
치 제가 복무했던 사단의 본부대 같습니다..

그에 비해 종로 도서관은 뭔가..좀 여유가 있습니다..정독 도서관에
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격증, 공무원, 고시..등의 뭔가 목적을 갖
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종로 도서관은 좀 더 여유로운 모습
입니다..사람들이 더 공부를 안 한다는 말도 되지만..글쎄..하루 종
일 옛자료들을 뒤적이는 할아버버지....안니면 자기 관심사에 대한 책
들을 여유롭게 보거나..하다 못해 지나간 신문이나 잡지들을 훑어 보
는 모습들은 정독 도서관에는 없는 모습들입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이
렇게 여유롭고 생산적인 백수들이 많고..또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
으면 합니다..따지고 보면 옛날 선비들도 다 백수들 아니었습니까..언
제 부터 백수가 수치스러운 말이 됐는지..다 자본주의 영향이지..일본
의 지방도시 도서관을 가면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할아버지들의
수가 꽤 많다더군요..그 할아버지들이 연구기관에서 돈 받고 하는 것
도 아닐텐데..건전하고 생산적인 백수들이 국가의 힘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걸로 딴 소리는 마치겠습니다..
암튼, 저는 수능을 두어달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고..이 종로 도서관으
로 흘러들어오게 됐습니다..
5 . 10

289 . 종로 도서관2
루스이 소니도스

실제로 만 19살이 될 떄까지 사회와 저 개인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즉, 내가 국가에 얼마만큼 세금을 내고 국가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지..같은 것 말이죠..그러니까 사설 독 서실을
다닐 떄까지 저는 국가가 저에게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다 시립 종로 도서관을 다니면서 비로서 국가와 저
와의 관계가 피부로 느껴진 것이었죠..

종로 도서관은 얼마나 많은 백수들에게 삶의 위안을 주는지 모릅니다..
제대 후에 쓴 '첫사랑'이나 '프랑스 영화처럼', '우렁 각시'등등
의 거의 대부분이 이곳에 쓴 것들입니다..그런데..정독 도서관에서는
이상하게 잘 안 써져요..종로 도서관에서도..열람실 같이 좀 조용한
공간은 부담스럽습니다..저는 자료실이나 아니면 식당을 주로 쓰죠..
멀쩡하게 열람표를 끊어갖고 열람실은 들어가지 않고 식당에만 있다
오기도 해요..좀 적당히 시끄러워야 맘이 편하고 오히려 집중이 되더
라고요..

종로 도서관하면 뺴놓을 수 없는 것이 비둘기입니다..올림픽때 뿌려
놓은 비둘기들이 어찌나 많은지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지요..
언젠가는 동네 방앗간 앞에 있는 커다란 대야에서 진열되어 있는
곡식(조..같은 거요.) 위에서 헤엄을 치며 노니는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아주 얄밉더군요..비둘기가 수영을 하더라니까요. 사람들 먹는
곡식 안에서...북한에선 수만명의 동포가 굶어죽고 있는데..비둘기 눈
빛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 얄밉습니다..그 생각없는 눈동자라니..
그런데 종로 도서관 비둘기들은 더 악동들입니다..아예 자신들이 비둘
기라고 생각도 않고 날으려고 들지도 않고 마치 개처럼 꼬리를 흔들
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구합니다..
안주면 성깔 부리기 까지 합니다..전선줄에 한 쪽 다리를 잃은 비둘기
무리가 꺵판을 친다고 상상해 보세요..이건 진짜 불량배가 따로 없어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백수들을 비둘기마저 무시
합니다..정독 도서관 비둘기들은 안 그러거든요..

암튼, 입시를 한 두 달 남기고..이곳에서 공부를 하려 햇죠.새로운 마
음으로..근데..책과 펜이 없더군요...설마 아무리 놀아도 문제집이나
연필, 펜같은 학생의 기본적인 품목들은 들고 다닐줄 알았는데..놀랐죠..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다행인데..친구랑 맨날 흡연실에서 입시제도에
대한 토론만 했습니다..덕분에 입시 전문가가 됐습니다...자랑이
아니라 실제로 종로나 대성학원이 발표하는 예상커트라인이나 합격율,
경쟁율보다 제가 예측한 것이 훨씬 정확했죠..그런 거 연구하는
게 정말 도움이 되더라니까요..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이 글을 보면
안되겠지만..전 종로 도서관 흡연실에서 입시 준비를 마무리 지었습니
다...각 학교의 예상 커트 라인이나 경쟁율 실제로 저의 예상에서 빗
나가지 않았습니다..덕분에 대학에 가기는 갔죠..어쩌면 학원가로 진
출했으면 대성을 했을지도 모릅니다..저는..

지금은 흡연실이 사라지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게 하더군요..담배는
안 피지만..가금 옥상을 올라갑니다..예전에는 못 올라가게 했거든
요..서울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을지로까지
는 들어옵니다...청와대도 보이고..
5 . 14

290 . 청춘 여인숙 4
MacTR

귀환한 Y의 첫마디는 "술 한잔 합시다"였다 .
해장국집 밝은 불 빛아래 Y는 깨진 안경을 끼고 있었고
이마에는 피가 눌러붙은 붕대를 두르고 귀마개가 반쯤 찢어진
중공군 모자를 쓰고 있었다 . 엄청난 악취와 함께
말로만 들었던 연근해 어선의 선상 생활이 그대로 그려졌다

묵묵히 거푸 몇잔의 소주를 청량음료처럼 들이키고 내뱉은 다음말은
"내 이 날이 올 줄 알았소"
그리고는 어부의 심경을 몇마디하더니 취기가 올라왔다 .
물론 우리는 계약서를 꺼낼 엄두로 못하고 겨울 해가 뜰때까지
함께 취해갔다 . 연민과 자조와 너덜해진 기대와 ..

그리고나서 사흘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청춘 여인숙 두개의 방 앞에는 나란히 소주병이 줄을 이어섰다 .
Y는 잠에서 깨면 술을 마시고 취하면 펑펑 울었다
그리고 Y가 잠들면 우린 멍하니 바다만 보고 있었다
술과 눈물과 바다 . 계약서는 꼬깃꼬깃 걸레가 되어가고 있었고 .

3공화국 시절 반정도를 나라에 기부하고 남은 땅만으로도 한 마을이
될 정도의 거부에게 마지막 남은 마늘쪽 같은 귀퉁이 대지는
결국 나흘째 되는날 K의 중재로 우리 손에 넘어왔다 .
우울함도 잔인함도 무상함도 아닌 감정의 맨 밑바닥 걸레 보푸라기
속에서 마지막 잔을 나누었다 .

지금 Y의 옛 땅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
그 아파트는 대로에서 큰각도로 회전하여 경사로를 올라간다 .
경사로의 진입 도로가 바로 Y의 마지막 땅 부분이고
고층에 맞닥뜨린 기류변화로 유난히 골바람이 드센 곳이다

억대가 좀 넘었던 땅값으로 그후 Y의 생활이 어땠는지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야기할게 못될 거같다 .
스무날을 기다리고 사흘밤을 함께 젖었던 Y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 삶이란건 저주스럽게 순차적이었다 .

그 아파트 경사로를 회전할때 가끔 입구에서 차를 내린다 .
소용돌이 같은 바람을 맞으며 눈 앞의 부두를 보고 있으면
그 겨울 청춘 여인숙 바람을 타고 들리는 소리가 있다 .
"나 이런 날 줄이 올 줄 알았소"

끝 . 감사합니다 .
5 . 14

293 . 칼럼 (아버지는 나의 영웅)
루스이 소니도스

잡지에 쓰던 칼럼중 하난데..잡지가 출간이 안되네요..몇 개 올려도
상관 없겠죠?

<아버지는 나의 영웅>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미국에서도 찍고 프랑스에서도 찍었지만 두
  편 다 보지 못했다.

이등병 시절, 나는 부대 행정반에서 아버지와 마지막 통화를 하다 눈물을
쏟았다. 암 투병중이셨던 아버지가 힘내라고 하실 때, 나는 그
만 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던 내 자신에 부끄럼을 느꼈던 것이
다. 수화기를 급하게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가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
때까지도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휴가 날짜가 나온 바로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나
는 일주일 뒤에 휴가를 나올 것이라는 전화를 하려는 기대를 갖고 잠
이 들었지만, 나를 깨운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영웅적인 아버지는 아니셨다. 월남전에서 훈
장을 받은 적도 없고, 맨손을 집 안을 일으켜 세우신 것도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사업을 하신 것도 아니었고,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알만
큼 이름을 날리시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물 속에서만큼은 영웅이셨다. 적어도 나에겐.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 수영 선수도 하셨었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적
도 여러 번 있으셨다. 나는 평상시의 아버지에게서 영웅적인 모습을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물 속에서의 아버지 모습만큼은 평
범하게 그릴 수가 없었다.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
가 헤엄으로 태평양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단체로 물
에 빠져 그 수가 100명이 넘는다 해도 모두 구하고 여유롭게 낮잠을
즐기실 거라 생각했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을 말 안장처럼 올
라타 강가와 수영장을 누비곤 했다. 그때 아버지의 등을 어루만지던
촉감을 기억하면 지금도 아버지는 나를 태우고 일본까지도 갈 수 있다
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아버지는 병마와 싸운 흔적만 보일
뿐, 나를 등 뒤에 태우고 강가를 누비던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다.
제대를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헤매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또 다시 흐르고 말았다. 나는 이제 등 뒤에 나를 태우고 다니시던 아
버지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가장 영웅스럽게 남아 있던 아버지의 기억을 꺼내려 하지 않아
도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는 내 마음 속에서 다른
의미의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누구나 나이만 먹으면, 세월만 흐르면 쉽게 이
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
고, 피서철마다 피서를 가고, 자식들 대학에 보내고, 아버지란 이름
으로 가정을 이루고.. 이 모든 것들이 나는 나이만 먹으면 그냥 이루
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희생이 따르는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현실은 다가서면 멀어지는 법이다. 내가 나이를 먹으며 아버지의 모
습을 닮아가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 나이가 다가오니 멀리 있었
을 때는 그렇게 가깝게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왜 그렇게 멀게 느껴
지는지.. 나이는 먹어가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나의 아버지만큼 할 자
신은 점점 없어진다.
5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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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Free Board 내용 중에 오려 온 것들입니다 .
이 외에도 Free Board 에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