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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 레모네이드 여름
easy chair

신발장에 구겨넣어둔 운동화를 오랫만에 꺼내 신는데
바삭 . 푹신 . 까끌 . 포근 . 흔들 ...
촉감이 회로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 왔다 .
여름바다에서 묻어온 모래가 그대로 운동화 바닥
2% 쯤 쌓여 있었다 .

베란다로 가지고 와서 가을 햇살 아래 신발을 뒤집으니
모래가 빛을 반짝이며 떨어져 내렸다
동해 바다에서 온 모래알을 타일바닥에 깔아놓으니까
여름 냄새와 함께 노랑과 은빛이 아른거렸다 .

작년 여름은 베낭 무게에 눌려 당나귀처럼 보냈기에
올해는 이를 갈고 무게를 줄이기로 했다 .
먹을건 딱 하나만 가지고 가자고 했다 . 결과는
레모네이드 .

바다와 레모네이드 .
물에서 나와 머리를 5%만 말리고 담배를 피면
필터에 바닷물에 조금씩 베어든다 .
니코틴 45% + 염분 15% + 레몬 33%
= 칵테일 '레모네이드 여름'
나머지 7%는 '고요' 또는 '뭉쳐둔 하늘을 봄'
스콰시는 힘드니까 대신 라임쥬스를 듬뿍 - 권고사항 .

머리결을 타고 바닷물이 흘러내리고
까망 쥬브에 기대 앉아 짧은 바람을 느낄때
파도소리와 함께 깔깔대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며 ...

덕분에 우리는 동해 바다에서 제일 배고픈 일당이 되었다
나중엔 레몬가루랑 밀가루를 바꿔서
수제비라도 먹자는 기특한 제안도 해봤지만 묵살되고
노랗게 노랗게 바래져갔다 .

정류장에서 국도에서 평상에서 틈만나면
쿨러에 재워둔 원액을 생수에 희석해 마셨다 .
노란 달이 떴고 노란 노래를 했더니 수평선마저 노란선이 되었다

한 줌이 안되는 모래를 빈 비누곽에 옮겨 담았다
제목 스티커를 붙여 보까 ...
흔적 . 레모네이드 여름
10 . 8

463 . 춘래 불사춘
루스 이 소니도스

(봄은 왔건만, 온 것 같지 않더라…)

내리는 빗줄기에도,
살결을 타고 넘는 바람결에도,
봄기운은,
확실히 묻어있더라.
겨우내 생각했던 봄날의 햇살이
그대로
그 햇살로
내 몸을 감싸 안고,
살얼음 뜯어내어 속삭이는 조용한 실개천의 입맞춤에도
또한,
봄이라
응얼거림이 묻어있더라.
봄은,
내게는,
너무나도 봄같이 다가오더라.
살을 에는 찬바람을 씨앗처럼 타고 내려,
얼어붙은 발자국에 이슬처럼 뿌리 내려,
상상보다 현실 같은,
현실보다 상상 같은,
봄은,
그렇게도 봄같이 다가오더라.
너무도 봄같이 다가온 봄은
여름의 기대와 가을의 추억을 잊게 하며
겨울의 고통까지 지우더라.
해서..
겨울 뒤의 봄이 아닌,
여름 전의 봄이 아닌,
봄은, 봄처럼 뿌리내려 내 안에 있더라..

(봄이 봄처럼 왔건만, 온 것 같지 않더라…)
10 . 11

478 . 가을 예찬
루스 이 소니도스

올해는 유난히 단풍 빛깔이 예쁘답니다..
부천으로 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단풍이 지는 것은 나무들이 제색깔을 찾기 때문이랍니다..
생산성이 없는 광합성을 멈추면서..엽록소들이..뒷줄로 빠지며..
본연 의 색깔이 나오는 거라더군요.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본래의 색깔을 뽐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그 아름다움을 .. 본래의 색깔을 찾기 위해서는.. 제색깔..
제 모습..으로 ..겨울의 쓸쓸함과 봄의 설레임..여름의 열정을 지나쳐야
만 했겠지요..그래서..그리고 난 후에야..비로소 제색깔을 알고 ..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거겠죠.. 가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거기에
있 는 거겠죠..
10 . 24

481 . 사랑했던가 1
tkhong

초여름 밤의 습기찬 공기가 내려 앉던 목재 야적장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그만 만나자 고 그랬다 .
여자가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 눅눅한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다 울고 난 여자가 그랬다
얼마전 '워털루'라는 영화에서 대패한 영국 장군이
"타이밍이야 ... 나뽈레옹에게 타이밍에서 졌어" 라던 대사 ....
여자는 자신이 먼저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하지 못한게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
타이밍에서 진것 뿐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자가 사라졌다

세월은 남자에게 몇 차례 연애라고 할수도 있는 일들을 남겨주고
흘러갔다 .
랜디 크로포드가 You left me , Just when I needed you most 란 노래를 불렀고 ...
남자는 패자들의 한숨에 쓴 웃음을 던져줬다 .

그러나 세월이 남자에게 슬픔이란걸 흔하게 지워주고 나자 ...
남자는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타이밍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
그동안 ...
남자는 여자들에게 고백하는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 ...
이별의 타이밍마저 잃고 ... 비참한 타이밍에 거리로 내몰렸다

그동안 ...
여자들은 남자의 곁에서 너무 오래 기다렸거나 ...
기막히게 엇갈린 시간대에 돌아선 남자의 등을 바라봐야 했다 .

그동안 ...
남자는 이제는 아파트가 서버린 지난날 목재 야적장에서 손목시계를
깨버리기도 하고 ... 타이밍을 위한 고사를 몇번 지내봤다

남자는 ... 자신은 타이밍에서 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 지나치게 타이밍을 의식하여
타이밍에 밥이 되 온것이라 느꼈다 .

남자는 사우나에서 훔쳐온 모래 시계를 메트로놈과 나란히 놓았다 .
메트로놈이 딸랑이고 모래가 흘러내린다
아직까지 남자는 사랑의 타이밍이라는것이
모래처럼 흘러가기만 하는게 아니라는걸 잘 모르고 있다
메트로놈이 딸랑딸랑 경종을 울리는데도 ....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문장 구두점까지 비추어지는
투명한 소설책처럼 ...
남자에겐 ... 오래전의 단어 하나가 ...
너무 오래 남아 있었다
10 . 24

483 . 토끼와 술 취한 아저씨
easy chair

전철 안의 폭탄은 따로 없다 . 술 취한 아저씨 .
아까부터 손잡이를 잡은 팔꿈치가 어깨며 머리를 짓누르기에
피하기 싫어서 잔뜩 힘을 모아 버텨보는데
갑자기 휙 움직이는 바람에 발라당 넘어갈뻔했다 .

그때부터 아저씨는 알콜 바람이 들어간 풍선이 되서
전철안을 흘러다녔다 . 툭 부딪치기도 하고 넘어질뻔 하고 ...
승객들은 단합된 맘으로 아저씨와 눈길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같은 시간 . 가운데쯤 자리에 앉은 커플 여자가
토미 헬파이어 쇼핑백을 열어서 뭔가를 꺼냈다 . 토끼였다
순간 . 아저씨를 피하던 수십개의 눈동자가 토끼에게 옮겨졌다
지겨운 주정에 대한 보상치고는 너무 귀여웠으니까 ...

인기없는 아저씨가 귀염둥이 토끼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토끼에게 이름을 붙여주겠다며
첨에는 '토야'라 하더니
곧 '쥐토'라고 바꿔 부르며 성명풀이까지 덧붙이셨다 .
"쥐나 토끼는 사람을 다 피하거등 "

약간 목이 잠겨들었다 .
토끼는 아저씨가 좋아진것 같았다 .
사람이 피하는 사람과 사람을 피하는 동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토끼는 먼가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아저씨처럼 적당히 포기하고
사는 요령마저 터득하고 있는듯 했다

아저씨는 토끼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고
주인 여자가 가방에 밀어넣으려 해도 토끼는 고개를 다시 내밀었다
천대와 환대 . 두개의 기류 사이에서 승객들은 난감했다 .

역에 서자 커플이 서둘러 내렸다
아저씨는 승강구 창문에 눈을 바싹 대고 토끼를 바라보고 있었다
쇼핑백에서 귀가 접힌 토끼가 기를 쓰고 얼굴을 내밀었다
전철이 움직여가고 승강장에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이상한 이별 하나가
언제나처럼 바람이 잦아지며 사라졌다
10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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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Free Board 내용 중에 오려 온 것들입니다 .
이 외에도 Free Board 에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