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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 깅까의 하얀밤
easy chair

깅까를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빠져있다 .
첨 봤을때 깅까는 질식할것 같은 애였다 .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가끔 빤히 쳐다볼때면 풍선이 하나 올라가는 느낌 .

이따금 전화에 대고 이야기를 하면 스모크가 깔린
바이올린 1번선 스타카토 음이 나온다 .
거기다 말 마디 끝이 희한하게 쭉 당겨져서
'깅까-'라는 단어를 말끝마다 붙인다 .
말하자면 그건 '그러니까' 쯤 된다

깅까는 미용실에 들고갈 만화 컬렉션이 묶음으로 있는것 같다 .
머리결도 스타일도 모두 순정만화의 숏컷 그대로다
또 하나 . 하얀색에 전생애를 받친 애 같다.
흰 스커트와 티는 한남대교 자동차 숫자만큼은 될거 같다

아이스크림과 담배를 매달고 살고 얼굴마저 창백하다 .
창가에 가만 앉아있는걸 보면 그대로 대리석으로 변해버릴것 같다
씨씨였던 친구가 군대 지원해서 가버리자
사모았다는 알약 뭉치도 흰색이었다 .

하얀색은 밤에 빛나서인지 깅까는 밤이오면 살아난다 .
밤샘하는 카페 한구석에 턱괴고 화이트 러시안을 홀짝이는 장면은
장난 아니다 . 이태원에 있는 온통 병원 주사실처럼
하얀 인테리어에서 보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

3교시 수업마저 들을수 없는 늦잠에 학교도 그만두고만
깅까는 누군가를 사귀면 자꾸 실패한다 .
사람들은 만화를 보지만 만화처럼 살지는 않는가보다

깅까네 집 근처에 운동장 스탠드가 분위기 있는 학교가 있다고해서
둘이서 포켓 사이즈의 술을 한병 사들고 갔다 . 물론 심야에 .
깅까는 금방 취해버렸고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했다
파가니니가 달밤에 내려온것 같았다 .

깅까가 녹음한 노래 하나를 들려줬다 .
'하얀 비단에 싸인 밤'이란 노래라고 했다 .
함께 밤새 그노래를 들으며 취했다

담장에 켜져있는 외등에 날벌레들이 뽀얗게 몰려들어
안개가 핀것 같았고
운동장에는 커다란 하얀 천이 코러스를 따라서 굽이져 흔들렸다 .
새벽으로 밝아오는 빛이 섞이면서 하얀천은 잘게 나누어져
잔물결이 되다가 사라져갔다 .
한방울쯤 물이 하얀 스탠드 바닥에 떨어졌다 .

첫 전철로 돌아오면서 깜깜한 창밖을 보고 있다가
혼자말로 속삭여 봤다 .

누군가 만화처럼 사랑하는 방법을 물어온다면
깅까 ......
9 . 4

430 . TV 천국
poo's red jacket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TV 프로를 본다.
이 프로그램은 짧은 에피소드 3가지로 구성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언제서부인가 늘 동물 얘기가 되었다.

오늘도 38킬로짜리 거대한 개를 엎고 다니는
아주머니의 얘기가 나왔다.
하는 짓이 꼭 어린아이같은 이 거대한 개는 엎어 달라고,
아주머니의 팔을 깨물고
애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쩔수없이 나이 많으신 아주머니가 등을 떡하니 갖다 대면,
덥석 앞발을 들어 엎일 태세를 마친다.
참~ ‘세상에 이런일이’ 아닐수 없다.

잠깐, 전화를 받다가, 에피소드 하나를 놓친다.

세 번째 에피소드.
어느 동네에 매일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선물아저씨' 가 있단다.
6mm 카메라는 옥상에 숨어 있다가
'선물아저씨'가 나타나자 살금살금
아이들 틈을 비집고, 급습한다. 무지하게 현장감이 전해져 온다.

카메라에 잡힌 선물아저씨는 행색이 초라한 장애인 아저씨였다.
집배원 시절 사고로, 팔과 다리가 심한 장애를 입으셨으나,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당신 자신이 힘을 얻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사뭇, 감동이 복받치는 얘기였다.

그리고는 그 아저씨의 선물 나눠주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한 꼬마는 다른 아이들처럼
덥석덥석 선물을 차지하지 못하고, 쭈뼛거린다.
이제는 버릇처럼 선물을 받는 아이들 사이에
그 꼬마는 다가갈까 말까 망설인다.

선물아저씨는 선뜻, 꼬마 앞으로,
선물이 담긴 봉지를 열어주며, 말한다.
'갖고 싶으면, 갖으면 돼......'
꼬마는 그 말에 맑은 웃음으로
그제서야 선물 하나는 집고 수줍게 도망간다.

가슴이 먹먹하고 나도 모를 눈물이 흐른다.
이 나이를 살다 보니, 원하고 갖고 싶어도 돌아섰던 때 많았다.
갖고 싶은데, 쭈뼛거렸다.
덥석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많질 않았던 거다.

그 사랑을 갖고 싶고, 그 자리를 갖고 싶고,
그 성공과 그 돈과 그 기회를...
난 많이 갖고 싶어 기도했다.
막상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곳에 있어도,
욕심나는 만큼 가져도 되는 걸까 의심했거나, 포기했다.

그 아저씨처럼, 쭈뼛거리고 돌아서려는 내게,
갖고 싶으면 가져 보라고.......
가지면 된다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이..... 있었다면~

눈물을 닦고 TV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때는
이미 프로가 끝난 뒤였다
현란한 광고들이 다시 화면을 채우고, 광고에서 내게 그런다.
‘세상을 다~ 가져라’
따뜻한 ~ TV가 내게 말한다. 갖으라고..............
9 . 8

435 . 보리차 한잔 1
tkhong

1
내가 어렸을땐 .. 영양실조라는 병의 환자가 많았을때입니다 .
그시절 .. 아파서 소아과에 가면 의사 선생님은 처방을 다하고 나서
.. 보리차를 자주 먹이세요 .. 하는 당부를 보호자에게 꼭 했습니다
어떤 병이든지 보리차 처방은 항상 따라다녔으니까 ..
모든 약의 기본쯤 되었다고나 할까요 .

그 시절 기차를 타면 ..주로 밤 열차였던 기억이 나는데
유리병에 담은 보리차를 팔았습니다 . 근데 .. 그건 객차 안으로
돌아다니던 홍익회 수레에서가 아니라 .. 기차가 역에 서면
플랫폼에서 창문마다 다니면서 마구 외치고 다녔습니다 .

그때야 역에 함 서면 .. 제법 오랫동안 기관차에 물도 갈고 하면서
서 있었으니까 .. 그런게 가능했겠지요 .
밤기차에서 지금의 쥬스병만한 양의 뜨끈한 보리차를 사던 풍경이
기억나네요 ..

최인호의 '가족'을 보면 안주인 되시는 분이 어릴때 역에서 그
보리차를 팔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 그렇게 보리차 정도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팔러 다니곤 했습니다 .
그 보리차를 꾸벅꾸벅 졸던 사람들이 한모금씩 마시고 ....
창밖으로는 증기기관차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곤 했지요 .

2
우리동네 중국집은 대만분이 하셨는데 .. 그집 아들과 친구라 ..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 군것질거리가 많지않던 시절 .. 중국집에서 ..
우리는 새끼 고양이처럼 짜장 부스러기라도 남지 않나 ..
어슬렁대곤 했습니다 . 카운터 위에는 빡빡머리의 장개석 사진이
있고 .. 자유중국 국기가 딱 붙어있던 .. 컴컴한 나무바닥 집에서 ..

겨울 어느날이었는데 .. 놀러갔더니만 .. 그 대만인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릇들을 하나씩 놓고 .. 고요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있더군요 ... 와 ... 졸라 맛나는게 있구나 ..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꼽사리를 끼고 앉았지요

그게 머였냐 .. 우동 그릇 가득 부어놓은 보리차에 건빵이 동동
떠있는거였습니다 . 아니 .. 이 울동네 요리의 왕족들이 ....
물어봤죠 .. 왜 이렇게 먹냐고 .. 단순하더군요 ..
부피가 크지쟈나 ..

화교분들은 음식 정이 참 많습니다 . 한 그릇 주시더군요 ..
글구 .. 내친구가 .. 그나마 빨리 먹어보려고 숟가락으로 건빵을
젓자 .. 아버님은 .. 점쟎게 .. 만다린말로 타이르더군요
갈탄 난로에서 보리차 증기가 푸우푸우- 올라가던 고요한 ...
중국집에서 나란히 건빵이 부풀때까지 기다리던 그 시간 ...

그립네요 .. 그분들은 세월따라 동네가 무지 많이 변했는데도
아직 그자리에 똑 같은 규모의 중국집을 하고 있습니다 .
듣기로는 상당한 재력을 모았다더군요 ..
건빵 스프를 기다리던 그 인내로 멀 못하겠습니까 ..

얼마전 빙수에 보리차 타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
그렇게 보리차는 어느 ... 음식에도 섞이던 .. 바탕이었습니다 .
보리차에 밥 말아 먹는거야 .. 다반사였죠 .
9 . 13

451 . 영화관에 갈때에는 7
tkhong

80년대 신촌에 있던 재재개봉관에서 '산딸기 4'를 보는데 ..
코먹은 여자소리 "어머 자기야 저사람들 왜저래 ..?"
축축한 남자소리 "음 ... 저건 말이야 .. 원래말이야 ..."
뒷자리의 이 커플은 끝날때까지 그렇게 궁금한게 많더군요 .

영화관에서는 가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관객들이 있습니다 .
'화엄경'을 볼때는 스님들이 많이 오셔셔 ... 극장 안이 조금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 제작할때 이런 배려까지 해서
조명을 연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

주로 변두리 극장에서 액션물이 상영되면 얼굴 옆에 구두가
놓인다든가 ... 하는 상황을 겪는 수가 있죠 ...
팝콘을 서로 집어던지는 건 양반이고 ...

옛 동아극장 2층에서
- 십년전에는 장사 안되는 영화는 2층만 입장 시켰죠
청소비도 안빠지니까요 -
'네이키드 탱고'라는 멋진 영화를 하는데
도살장에서 탱고추는 핏빛 장면에서 ...
뒷자리의 남자가 담배를 던졌습니다 . 여자 치마가 타고 ...
같이 온 남자와 담배남이 피터지게 싸우고 ...
탱고는 흐르고 ... 직원이 방망이 들고 나타나고 ...

또 80년대 . 지옥의 묵시록 처녀버전때 . 당시엔 심야극장이란게
유행해서 .. 멀쩡히 낮에 시간 비는데도 한밤에 보러갔죠
영화가 중간쯤 되는데 ... 남자애들 대여섯명이 웃통을 벗은채
맨 앞자리 땅바닥에 주저 앉아 .. 낄낄대며 휘파람을 불고
... 파월 장병 기분을 내더군요 .. 베트콩 같은 녀석들 .

스카라 극장에서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란 영화를 할때는 ..
보니 타일러가 마구 불러 재끼는 테마 노래가 나오니까
좌석의 반정도 관객이 일어나서 춤을 추고 ...
극장에선 미리 준비했는지 반짝이 조명과 스모크를 터트리더군요

올 봄에는 '엑소시스트'를 명보에서 조조 상영으로 보는데 ..
전날밤부터 완전히 배터리가 죽어있는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리는
겁니다 . 텅빈 극장에서 .... 소름 ....

90년대초 . 힐탑극장에서 '꿈꾸는 사람들' 이란 영화를 할때입니다
토요일이었고 ... 비가 내리는 늦가을 .. 좀 블루했슴다 .
힐탑 극장은 1층에 두개의 관이 골목길에 나란히 붙어있어서
관리하기가 아주 힘들었죠 ... 표를 사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
시간이 되자 .. 직원이 이렇게 부르더군요 .
"꿈 꾸는 사람들 오세요 "

그날밤 영화가 끝나고 버스 창으로 빗방울이 때리는데 ..
맘 저 바닥에서 뜨뜻한 온기가 내내 자리하더군요 ..
... 날더러 꿈꾸는 사람이래 ...
그 영화 원제는 '텔레그라피스트' 노르웨이 영화인데 ..그때만큼
울나라 제목이 더 멋진 경우가 없었습니다 .

영화관에 가면 ...
어떤땐 ... 안팎으로 두개의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기도 합니다
9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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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Free Board 내용 중에 오려 온 것들입니다 .
이 외에도 Free Board 에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